미국교육이야기

만 3세, 첫 IEP 미팅과 뉴저지 공립학교 ABA 클래스 적응기 (프리스쿨 1년 차)

rainbowcity 2026. 8. 29. 23:24

만 3세 생일이 다가오면 지난 1년 반 동안 집 거실로 찾아오던 얼리 인터벤션 서비스는 공식적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그리고 아이의 모든 발달 기록은 거주지 공립학교 학군으로 이관되어, 마침내 법적 효력을 지닌 공식 특수교육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 둘째 아이에게 공식적인 IEP(개별화교육계획)가 처음으로 생겨난 것도 바로 이 만 3세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가 살던 곳은 뉴저지주의 브릿지워터-라리탄 학군이었다. 학군에 따라 시스템의 차이는 있겠지만, 뉴저지 공립학교 특수교육을 경험하며 가장 놀라웠던 점 중 하나는 일반 특수학급을 넘어 공립학교 프리스쿨과 킨더가든 과정에 정식 ABA(응용행동분석) 클래스가 개설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1. 6명의 전문가들과 마주한 첫 IEP 미팅의 기억

학군에서 연락이 와 지정된 학교 회의실로 향했을 때의 긴장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학교 교감, 앞으로 아이가 배정받을 특수반 담임 교사, 소셜워커, 학군 심리학자, 언어치료사 등 6명에 달하는 전문가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리 인터벤션에서 넘어온 아이의 발달 평가서를 토대로, 학교에서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떤 서비스를 몇 시간 제공할 것인지(스피치, 작업치료 등)를 조율하는 자리였다.

그 무거운 긴장감 속에서 내 마음을 단번에 녹여준 것은 다름 아닌 담임 선생님의 첫 질문이었다. 어려운 교육 용어가 아닌,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아이가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인가요? 집에서는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제일 행복해하나요?"

아이의 결손된 능력이나 점수가 아니라, 아이라는 존재 자체와 아이가 좋아하는 관심사부터 파악하려는 그 사소한 질문 하나에 굳어 있던 어깨의 힘이 스르륵 풀렸다.

 

2. BCBA 자격을 가진 공립학교 교사와 아담스빌 초등학교 배정

뉴저지의 ABA 클래스는 주로 자폐 스펙트럼이나 행동 조절에 어려움이 큰 아이들을 위해 고안된 전문 학급이다. 놀라웠던 것은 프리스쿨 담임 선생님이 일반 특수교사 자격을 넘어, 행동분석 분야의 최고 전문 자격인 BCBA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공립학교 시스템 안에서 이런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교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부모로서 큰 축복이었다.

훗날 워싱턴주로 이사를 오고 나서야 이 뉴저지의 시스템이 얼마나 특별하고 귀한 것이었는지를 더 깊이 실감하게 되었다. 워싱턴주에서는 공립학교 자체에 이런 독립된 ABA 클래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심각한 행동 문제가 있는 아이의 경우 외부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어 BCBA와 행동 치료사(BT)를 학교로 파견하는 방식을 주로 쓴다. 하지만 현장에서 지켜보면 실질적인 행동 교정이나 체계적인 훈련이 이루어지기보다는, 그저 다치지 않게 데리고만 있는 사실상의 베이비시팅에 머무는 아쉬운 현실을 자주 마주하곤 한다. 그렇기에 교실 담임 교사 자체가 전문성을 가지고 하루 일과 전체를 체계적으로 지도해 주었던 뉴저지 공립학교의 ABA 클래스가 부모로서 얼마나 큰 혜택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당시 우리 동네 지정 학교(홈스쿨)에는 ABA 클래스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학군 내 다른 학교인 아담스빌 초등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집에서 거리가 제법 떨어진 학교였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아침마다 노란색 공립 스쿨버스가 집 앞까지 찾아와 만 3세의 작은 아이를 태우고 안전하게 등하교를 책임져 주었다.

 

3. 눈물의 첫 등교, 그리고 오전 10시의 안심 전화

드디어 찾아온 첫 등교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의 품과 집이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낯선 환경에 놓인 아이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돌아서는 엄마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하지만 학교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과 또 다른 어른(특수학급 보조교사인 파라에듀케이터)이 미리 교문 앞까지 나와 아이를 맞이했다. 선생님의 손에는 첫 미팅 때 내가 말해주었던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 들려 있었다. 우는 아이를 능숙하게 얼르고 달래며 교실로 이끄는 전문가들의 뒷모습을 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가슴을 졸이며 시계만 쳐다보고 있던 오전 10시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담임 선생님이었다.

"어머니, 걱정하고 계실 것 같아서 전화드렸어요. 아이가 울음을 완전히 그쳤고, 지금 장난감을 가지고 친구들과 아주 잘 놀고 있습니다. 안심하세요."

바쁜 학교 일과 중에 굳이 시간을 내어 불안해할 부모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준 그 전화 한 통. 그 배려 덕분에 비로소 마음을 놓고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4. 엄두도 못 내던 기저귀를 떼어준 학교의 기적

발달이 느린 아이를 키우며 가장 막막하고 두려웠던 숙제 중 하나는 바로 '배변 훈련(Potty Training)'이었다. 세 아이를 돌보는 일상 속에서 기저귀를 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학교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관찰하더니 "아이가 이제 기저귀를 뗄 준비가 된 것 같다"며, 내일부터 학교로 여벌 바지 5벌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반신반의하며 첫날 바지 5벌을 보냈더니, 하루 만에 옷을 다 버렸는지 다음 날에는 바지 10벌을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

매일 10벌의 바지를 챙겨 보내며 과연 될까 싶었지만, 교실에서 선생님과 파라에듀케이터들이 정해진 시간마다 아이를 화장실로 이끌며 끈기 있게 배변 훈련을 지도해 준 덕분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젖어서 돌아오는 바지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아이는 완전히 기저귀를 떼게 되었다.

부모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었던 큰 산을 학교가 전문성과 인내심으로 함께 넘어준 순간이었다.

 

5. 교실을 넘어 가정으로 이어진 든든한 서포트

아담스빌 학교에서 보낸 1년은 감사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내게 가정 내에서도 행동 중재나 생활 습관 지도에 서포트가 필요한지를 물어왔다. 당연히 도움이 절실했기에 요청드렸고, 선생님은 직접 우리 집으로 가정방문을 왔다. 아이가 집에서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식사나 놀이, 떼쓰기 행동에서 부모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꼼꼼히 관찰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하나하나 안내해 주었다. 학교 교실에만 머무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의 삶 전체를 학교와 가정이 함께 손잡고 케어해 주는 진정한 파트너십이었다.

선생님들의 세심한 배려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뉴저지 공립학교에서는 매년 특수학급 학부모들을 교실로 직접 초청해 정기적인 부모 교육 워크숍을 열어주었다. 행동분석 전문가(BCBA)인 교사가 직접 나서서 ABA의 기본 개념과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아이의 문제 행동이 발생했을 때 집에서 부모가 실제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들을 차근차근 짚어주었다. 학교에서의 훈련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무너지지 않도록, 학교와 부모가 한 팀이 되어 같은 방향으로 아이를 지도할 수 있게 이끌어준 것이다.

훗날 워싱턴주로 이주해 현장을 겪어보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 공립학교에서는 이런 식의 체계적인 부모 교육이나 교실 초청 세션을 찾아보기 어렵다. 공립학교 시스템 안에서 교사가 부모까지 품고 전문적인 지식을 나누어주었던 뉴저지의 그 배려가 얼마나 선진적이고 든든한 울타리였는지, 지나고 나서야 그 깊은 가치를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나아가 그 선생님은 미국 현지 시스템의 유연성을 살려 주말에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ABA 놀이반을 따로 운영하기도 했는데,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워낙 깊었기에 우리는 그 주말 놀이반을 무려 3년 동안이나 꾸준히 믿고 보냈다.

만 3세에 처음 손에 쥔 두툼한 IEP 서류는 한 아이의 온전한 성장을 위해 학교, 교사, 부모가 맺은 든든한 법적 약속이자 가장 따뜻한 울타리였다.

그렇게 아담스빌 초등학교에서 눈부신 성장의 1년을 보낸 후, 아이가 4살이 되던 해 마침내 우리가 살던 동네 지정 학교(홈스쿨)에도 새로운 ABA 클래스가 개설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다음 글에서는 정들었던 아담스빌을 떠나 프리스쿨 2년 차에 홈스쿨로 학교를 옮겨가며 겪었던 이야기와, 조금씩 성장해 가는 아이의 학교생활을 이어가고자 한다.